조루리지의 본당은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107년 완공되었고, 1157년 현재 위치로 이전되었습니다. 헤이안시대(794-1185)의 불교건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사원 가운데에 있는 연못의 서안에 위치하고 있어, 사원에서 모시는 아미타여래불과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본당에는 정토의 주인인 아미타여래의 목조상 9개가 모셔져 있으며, 불상과 동일한 개수의 문이 설치되어 있고, 그 뒤로 불상이 가지런하게 진열되어 있습니다. 아미타여래는 서방 극락정토의 주인이라 불리며, 순수하고 깊은 통찰력을 가진 부처로 신봉됩니다. 또한 반드시 사람들을 극락정토로 인도한다고 합니다. 문헌을 보면 12세기에 귀족과 황족의 요청으로 9좌의 아미타여래를 모신 사원이 지어졌다고 되어 있습니다. 조루리는 이 시기에 세워진 사원 중 현존하는 유일한 사원으로 추정됩니다. 9좌의 아미타여래상은 9개의 왕생 계단이 있다는 사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본당 내 중앙에 있는 가장 큰 아미타여래상은 11세기 후반에 9좌 중 가장 먼저 제작되었고, 다른 8좌는 12세기 초에 만들어졌습니다. 이들 불상의 표정과 머리 뒤 광륜의 모티브는 각각 다릅니다. 이들 불상은 가공된 여러 개의 목재를 짜맞추는 ‘요세기 즈쿠리’ 방식으로 제작되었으며, 내부는 비어 있습니다. 가장 큰 아미타여래상을 복원할 때 아미타여래를 모티브로 한 목판화가 불상 내부에서 여러 개 발견되었습니다. 이들 목판화는 불상이 제작된 당시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성지 미나미야마시로도노노 사토
교토부와 나라현의 경계가 되는 구릉부에 위치하는 조루리지. 이 일대는 오래 전부터 고후쿠지와 도다이지 등 나라에 있는 대사원의 성지로, 큰 사찰의 승려가 세속의 번잡함을 떠나 정신 수양과 연찬을 위해 출입하던 지역입니다. 도노(當尾)라는 지명은 과거에 삼층탑과 십삼층석탑, 오륜탑 등 탑이 능선을 이루며 줄지어 있어 '도오(塔尾)'라 불린 것에서 유래한다고 전해집니다. 지금도 인근에는 석불군과 즈이간지 터 등이 남아 있으며, 취락과 뒷산, 산림 등의 자연환경과 함께 역사적인 환경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즈이간지

고후쿠지의 말사. 가마쿠라시대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이후 작은 사원으로 복구되었으나 메이지시대 첫해에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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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다이지
8세기 전반 쇼무 천황이 창건한 일본을 대표하는 대사원. 화엄종 대본산. 본존불은 나라 대불로 유명한 노사나불. 대불전은 세계 최대 규모의 목조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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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백도
정토교에서 극락왕생을 바라는 신심의 비유. 선도(善導)가 정토교 신심에 비유했다고 한다. 주로 족자에 그림을 그려서 설법했다. 동쪽에서는 석가의 '나아가라'는 목소리가 들리고 서쪽에서는 아미타불의 '이리로 오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 목소리를 따라 사람은 하얀 길을 건너 서쪽에 도달하고 깨달음의 세계인 극락에 왕생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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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정원
헤이안시대부터 가마쿠라시대에 지어진 일본정원 형식. 정토사상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극락정토의 세계를 재현하고자 사원 건축물 앞에 정원과 연못이 펼쳐지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헤이안시대 귀족의 주택양식인 '신덴 즈쿠리'의 정원, 서원양식인 '쇼인 즈쿠리'의 정원과 함께 자연풍경식 정원으로 분류되는 정원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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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몬(누문)
이층 구조의 입구 문으로 1 층에는 지붕이 없이 고시구미 양식으로 가장자리가 난간으로 둘러지고 위층에만 지붕이 있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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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산
이시카와, 후쿠이, 기후 3개현에 걸쳐 있는 하쿠산 산맥을 성역으로 하는 산악신앙. 하쿠산 3개소 곤겐(부처나 보살이 중생을 구하기 위해 일본에 임시 권도로 신으로서 나타난 것)을 모시는 신불습합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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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조인
고후쿠지에서 황실이나 귀족이 주지를 역임했던 사원이다. 덴로쿠 기간(970~973년)에 창건되었다. 다이조인과 교대로 고후쿠지의 별당을 맡았다. 메이지유신으로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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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신
후지와라노 다다미치의 아들. 당초에는 이치조인으로 들어가 가쿠케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1139년 26세에 고후쿠지에서 별당을 보좌하는 '곤노벳토'로 임명되었으나 후지와라노 무네타다의 아들 가쿠세이가 별당으로 보임된 것에 불복하여 나루카와산사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였고, 이후 도오의 오다와라 조루리지 근처로 옮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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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당
본래는 율령관제의 본관 외에 다른 관청의 장관을 겸임했을 때 부르던 이름이었으나 후에 전문 기관장을 칭하는 용어로 널리 이용되었다. 사찰에서도 절의 업무를 총괄하는 직책으로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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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쿠지
나라시에 있는 법상종의 대본산. 669년에 전신이 되는 사원이 건립되어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710년 헤이조쿄로 천도하면서 창건되었다. 후지와라 씨가 일족을 위해 세운 절로, 후지와라 씨의 발전과 함께 고후쿠지의 영향력 또한 커졌다. 수많은 국보 및 중요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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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유도명소도회

교토에 관한 지리지. 1787년 간행. 먹 한 가지로 찍은 5책. 1780년에 간행된 『도명소도회』의 속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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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1600 년 (게이쵸 5)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를 하고 1603 년 에도에 막부를 열었을 때부터 1867 년 (게이오 3)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다이세이호칸에 이르기까지 약 260 년간의 명칭. 도쿠가와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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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조시대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지묘인토 황실 계통의 고묘 천황을 추대하여 북조를 세우고, 고다이고 천황이 요시노로 옮겨가서 남조를 세운 시기를 남북조시대라 부른다. 고다이고 천황이 군사를 일으킨 1331년부터 남북조 양측의 화해가 성립된 1392년까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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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주

재앙을 막고 소원을 들어주는 힘을 가진 보석을 뜻하며, 일본에서는 윗부분이 뾰족한 구슬 모양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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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

석등의 한 부분. 간(간주석) 위에 세우고 그 위에 화대(화사석)를 올리는 대. 아래쪽에 연꽃잎을 조각하고 상단은 단 모양으로 되어 있다. 연꽃잎 위에 고자마를 조각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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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간주석. 석등의 기초석 위에 세워서 위쪽의 점등 부분인 화대석(화사석)과 입석(옥개석), 옥석(보주 등)을 지탱하는 기둥 모양의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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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안시대
간무 천황의 헤이안 천도 (794 년)부터 가마쿠라 막부의 성립 (1185 년)까지 약 400 년 동안, 정권의 중심이 헤이안 경 (교토)에 있던 시대. 보통 초 · 중 · 후 3 기, 즉 율령제 재흥기 · 섭정 관백기 · 원정기 (말기는 헤이시 정권기)로 나뉜다. 헤이안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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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배자를 위한 차양

신사나 불당에서 정면 계단 위로 튀어나온 지붕. 행사를 주재하는 승려나 참배자가 건물 정면에서 예배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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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여래불
서방에 있는 극락정토의 교주. 모든 부처 중 가장 광명이 빛나며, 아무리 중한 죄를 지은 중생이라도 구제해준다고 일컬어지는 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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