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루리지의 정원은 수행승인 기묘가 니시 오다와라산에 암자를 세우는 11세기 중반에는, 이미 승려들이 자연의 샘터에 모여 크고 작은 건물을 지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곳의 샘을 연못이 있는 정원으로 확장하여 정비한 사람이 후지와라 씨 출신으로 고후쿠지의 별당을 지낸 에신이었습니다.
에신은 나라를 떠나 이곳에서 은둔생활을 할 때 조루리지를 고후쿠지 이치조인의 기도소로 삼고 사원의 경계를 정하는 한편 연못을 확장해서 조경석을 배치하고 연못 가운데에 섬을 만들었습니다.
1157년에는 본당을 서안으로 이동시키고, 본당 앞의 연못가에 모래톱을 만들어 연못 건너편에서 아미타여래를 참배할 수 있도록 정비했습니다.
이후에도 삼층탑을 교토에서 이축했으며, 하쿠산과 가스가 다이묘진의 분령을 간곡히 청하여 수호신으로 모셨습니다.
1205년에는 교토에서 쇼나곤 법안(法眼)이 방문하여 로몬(누문) 내에 돌을 배치했고, 모래톱뿐만 아니라 거친 바다를 이미지하여 돌을 배치하는 등 해안의 풍경을 표현했습니다.
이후에도 본당 앞에 ‘에이닌 4년'(1296년)이라는 각명이 새겨진 조즈바치를 배치하는 등 연못이 달린 정원으로서의 모습을 갖추어 나갔으며, 서쪽으로는 본당과 9좌의 아미타불을 안치하고 동쪽으로는 삼층탑과 약사여래상을 모시는, 소위 정토정원의 모습을 완성시켜 갔습니다.
본당과 삼층탑을 잇는 동선에 이하백도의 사상을 표현하면서 서방정토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에도시대가 되면 본당 정면에 참배자를 위한 차양을 설치했고, 모래톱을 매립해서 연못 주위를 거닐면서 참배할 수 있도록 변화를 주었습니다.
이러한 정비를 통해 『습유도명소도회(拾遺都名所圖會)』에 새로운 정원의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국가의 특별명승지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성지 미나미야마시로도노노 사토
교토부와 나라현의 경계가 되는 구릉부에 위치하는 조루리지. 이 일대는 오래 전부터 고후쿠지와 도다이지 등 나라에 있는 대사원의 성지로, 큰 사찰의 승려가 세속의 번잡함을 떠나 정신 수양과 연찬을 위해 출입하던 지역입니다. 도노(當尾)라는 지명은 과거에 삼층탑과 십삼층석탑, 오륜탑 등 탑이 능선을 이루며 줄지어 있어 '도오(塔尾)'라 불린 것에서 유래한다고 전해집니다. 지금도 인근에는 석불군과 즈이간지 터 등이 남아 있으며, 취락과 뒷산, 산림 등의 자연환경과 함께 역사적인 환경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즈이간지

고후쿠지의 말사. 가마쿠라시대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이후 작은 사원으로 복구되었으나 메이지시대 첫해에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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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다이지
8세기 전반 쇼무 천황이 창건한 일본을 대표하는 대사원. 화엄종 대본산. 본존불은 나라 대불로 유명한 노사나불. 대불전은 세계 최대 규모의 목조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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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백도
정토교에서 극락왕생을 바라는 신심의 비유. 선도(善導)가 정토교 신심에 비유했다고 한다. 주로 족자에 그림을 그려서 설법했다. 동쪽에서는 석가의 '나아가라'는 목소리가 들리고 서쪽에서는 아미타불의 '이리로 오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 목소리를 따라 사람은 하얀 길을 건너 서쪽에 도달하고 깨달음의 세계인 극락에 왕생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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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정원
헤이안시대부터 가마쿠라시대에 지어진 일본정원 형식. 정토사상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극락정토의 세계를 재현하고자 사원 건축물 앞에 정원과 연못이 펼쳐지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헤이안시대 귀족의 주택양식인 '신덴 즈쿠리'의 정원, 서원양식인 '쇼인 즈쿠리'의 정원과 함께 자연풍경식 정원으로 분류되는 정원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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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몬(누문)
이층 구조의 입구 문으로 1 층에는 지붕이 없이 고시구미 양식으로 가장자리가 난간으로 둘러지고 위층에만 지붕이 있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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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산
이시카와, 후쿠이, 기후 3개현에 걸쳐 있는 하쿠산 산맥을 성역으로 하는 산악신앙. 하쿠산 3개소 곤겐(부처나 보살이 중생을 구하기 위해 일본에 임시 권도로 신으로서 나타난 것)을 모시는 신불습합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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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조인
고후쿠지에서 황실이나 귀족이 주지를 역임했던 사원이다. 덴로쿠 기간(970~973년)에 창건되었다. 다이조인과 교대로 고후쿠지의 별당을 맡았다. 메이지유신으로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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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신
후지와라노 다다미치의 아들. 당초에는 이치조인으로 들어가 가쿠케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1139년 26세에 고후쿠지에서 별당을 보좌하는 '곤노벳토'로 임명되었으나 후지와라노 무네타다의 아들 가쿠세이가 별당으로 보임된 것에 불복하여 나루카와산사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였고, 이후 도오의 오다와라 조루리지 근처로 옮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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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당
본래는 율령관제의 본관 외에 다른 관청의 장관을 겸임했을 때 부르던 이름이었으나 후에 전문 기관장을 칭하는 용어로 널리 이용되었다. 사찰에서도 절의 업무를 총괄하는 직책으로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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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쿠지
나라시에 있는 법상종의 대본산. 669년에 전신이 되는 사원이 건립되어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710년 헤이조쿄로 천도하면서 창건되었다. 후지와라 씨가 일족을 위해 세운 절로, 후지와라 씨의 발전과 함께 고후쿠지의 영향력 또한 커졌다. 수많은 국보 및 중요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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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유도명소도회

교토에 관한 지리지. 1787년 간행. 먹 한 가지로 찍은 5책. 1780년에 간행된 『도명소도회』의 속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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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1600 년 (게이쵸 5)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를 하고 1603 년 에도에 막부를 열었을 때부터 1867 년 (게이오 3)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다이세이호칸에 이르기까지 약 260 년간의 명칭. 도쿠가와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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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조시대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지묘인토 황실 계통의 고묘 천황을 추대하여 북조를 세우고, 고다이고 천황이 요시노로 옮겨가서 남조를 세운 시기를 남북조시대라 부른다. 고다이고 천황이 군사를 일으킨 1331년부터 남북조 양측의 화해가 성립된 1392년까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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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주

재앙을 막고 소원을 들어주는 힘을 가진 보석을 뜻하며, 일본에서는 윗부분이 뾰족한 구슬 모양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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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

석등의 한 부분. 간(간주석) 위에 세우고 그 위에 화대(화사석)를 올리는 대. 아래쪽에 연꽃잎을 조각하고 상단은 단 모양으로 되어 있다. 연꽃잎 위에 고자마를 조각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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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간주석. 석등의 기초석 위에 세워서 위쪽의 점등 부분인 화대석(화사석)과 입석(옥개석), 옥석(보주 등)을 지탱하는 기둥 모양의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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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안시대
간무 천황의 헤이안 천도 (794 년)부터 가마쿠라 막부의 성립 (1185 년)까지 약 400 년 동안, 정권의 중심이 헤이안 경 (교토)에 있던 시대. 보통 초 · 중 · 후 3 기, 즉 율령제 재흥기 · 섭정 관백기 · 원정기 (말기는 헤이시 정권기)로 나뉜다. 헤이안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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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배자를 위한 차양

신사나 불당에서 정면 계단 위로 튀어나온 지붕. 행사를 주재하는 승려나 참배자가 건물 정면에서 예배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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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여래불
서방에 있는 극락정토의 교주. 모든 부처 중 가장 광명이 빛나며, 아무리 중한 죄를 지은 중생이라도 구제해준다고 일컬어지는 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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